권철論 독대(獨對)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가 권철은 흔히들 말하는 사진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에 갑자기 사진이 좋아 사진을 배우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보도 사진을 찍으면서 꽤나 이름을 날렸다. 사진전문 주간지인 《프라이데이》 등 매체에 기고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보도 사진은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을 주지 않았고, 이름을 알리는 데도 괜찮아 사진가로서 평탄한 앞날이 나름 보장되었다. 그러다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을 접했다. 보도 사진 몇 컷만 찍어서 보내면 나름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그를 짓누른 뭔가가 그를 그렇게 두지만은 않았다. 그의 눈앞에 닥친 장면은 무너진 건물에 몸이 끼어 탈출하지 못한 어떤 여자 아이가 두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었다. 사람에게 닥친 저 고난이 나에겐 밥벌이, 이름 팔이의 대상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를 수차례 되뇌면서 권철은 이내 보도 사진가의 길을 버렸다. 사진가 권철의 첫 번째의 버림이다. 그 버림을 통해 사진가 권철은 사실 전달의 세계를 넘어 진실 추구의 세계로 들어갔다. 권철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일본에서는 상당히 인정받아 왔다. 도쿄 최대 환락가인 신주쿠의 가부키쵸(歌舞伎町)를 18년 동안 기록한 사진집 《가부키초》로 2013년에는 일본 최고의 권위 있는 출판상으로 꼽히는 ‘고단샤 출판문화상 사진상’을 수상했다. 그러다가 그는 느닷없이 한국으로 귀국을 결심한다. 그 계기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였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터졌을 때가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던 때였다. 일본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는데 그것을 버리고 오는 것이 만만치 않았으나, 그에게는 일보다 가족이 더 중했다. 사진가로서 두 번째 버림이었다. 두 번째 버림을 통해 사진가 권철은 사진으로 진실 추구를 위한 길에서 또 하나의 방편을 찾는다. 그는 제주에 정착하여 트럭으로 풀빵 (국화빵이다. 국화는 야스쿠니, 일본 제국주의의 문양이고) 장사를 한다. 트럭으로 장사도 하고, 거리 전시도 한다. 세상을 겪고, 기록하고, 전시하고, 행위 하는 것이다. 이미지로서의 사진만을 고집하는 것을 버리고, 이 사회에 저항하는 행위 사진가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사진계에 대한 좌절에서 핀 꽃이다. 그의 사진은 독대(獨對)다. 도꼬다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