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호論 : 基準何知我獨癡  그 기준이 무엇인지 나만 혼자 바보가 되네.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가 김문호는, 50대 이상의 한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대개 그렇듯, 예의 사진을 독학으로 공부하여 전업 사진가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해, 필름을 사기 위해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했던 사람이다.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번역 일을 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하였다. 그가 번역한 책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진 기술서와 사진 이론서이다. 그가 사진에 대한 담론에 강하고, 그것이 오롯이 자신의 사진에 녹아 들어가 있으며, 누구보다도 사진의 존재-의미론적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책을 읽고, 번역하고, 쓰고 했던 일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사실을 덧붙인다면 그는 이 시대 마지막 한학자로 불리는 노촌 이구영 선생이 창설한 한시 공부 모임 ‘이문학회’에서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사사했고, 생명사상가였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스승으로 삼아 문명에 대하여 남다른 인식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에 대해 고뇌하는 사진가인 것은 이런 바탕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사진은 대상 없이 상상으로 지어낼 수는 없다. 자기 생각 없이 소위 ‘있는 그대로’ 창작해 낼 수도 없다. 사진으로 말하는 모든 메시지는 장면을 채집하여 원래 그것이 가지고 있는 맥락 그대로 혹은 다르게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자기 주관에 따라 채집된 단편들을 이어 붙여 기록하는 기록이다.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하게 넓혀지는 기록이다. 다큐 사진가는 해석의 여지를 최대한 줄이는 차원에서 하는 기록과 해석의 여지를 최대한 늘이는 차원에서 하는 기록, 그 중간 어디쯤에서 기록하는 고민을 쉴 새 없이 한다. 세계와 역사에 대한 고민이 많고, 사유가 깊은 다큐 사진가 일수록 그 재현 방식의 이동 폭이 넓다. 김문호가 그 대표적인 사진가다. 1. 문명에 대한 비판적 해석 《On the Road》에서 사진가 김문호가 사진으로 제시하는 사유는 대상에 대한 고민이다. 80년대 그 질풍노도의 시대에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의 현장으로 달려갔는데, 그 자신은 그로부터 벗어나 사람들의 일상으로 갔다. 세계에서 존재하는 사건에 대한 의미 부여가 남들과 달랐던 것이다. 많은 다른 사람들은 혁명을 이야기 할 때 자신은 일상에 대해 성찰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말하는 현대 세계의 일상성이 갖는 반(反)혁명적 성격을 생각해보면 사진가 김문호가 얼마나 의미 있는 관찰을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 사진으로 말하기라는 차원으로 생각해 보면 소재로부터 벗어나기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니, 그것은 곧 사진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전유의 산물일 수밖에 없음을 제대로 알기 때문이다. 2014년 눈빛출판사에서 오롯한 사진집으로 다시 나온 《온더로드》 16쪽의 사진은 질주하지만 외롭게 남겨진 현대 문명과 그 안의 인간이 안고 있는 고뇌를 말하려는 관념의 이미지가 된다. 사진은 결국 인간과 문명이 행하는 ‘질주에 대한 허망한 보고서’이기에 길과 차량 그리고 지하철 장면이 많이 나온다. 가방을 들고 선 채 지하철을 기다리는 신사들을 찍은 사진은 (p. 28) 현대 문명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일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상반신이 제거된, 모두 다 하나같이 틀에 짜인 옷을 입고 가방을 든 채 지하철을 기다리는 군상은 홀로 우둔할  수 없는 그래서 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속박의 문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 페이지에 바로 이어 나오는 지하철 전동차를 기다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p. 30) 풍요로운 삶을 구가하기는커녕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하루하루 따분한 삶을 간신히 이어가는, 어찌 보면 죽어가는 소시민의 모습으로 보인다.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질주에 대한 허망함을 말하기에 충분한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결국 《온더로드》는 사건을 기억하고 보관하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아닌 일정한 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록하는, 사유와 재사유의 장(場)으로서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이는 사진가 김문호의 사유 세계가 넓고 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미지를 만드는 결정적 순간과 그것이 만드는 미학적 구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기는 정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기억과 사유를 위한 매체로 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사진 언어의 문제가 된다. 도시의 풍경이라는 게 하나의 주제를 놓고 볼 때 결국 어떤 이미지로 나타나더라도 기록적 차원에서는 대부분이 거기서 거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큐 사진을 찍는 이유는 뭔가? 그것은 그 이유가 사실의 기록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유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사실은 존재하지만, 그 사실이 말하지 못하거나 침묵 속에 묻혀 있던 또 다른 사실(들)을 보여 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적어도 그러한 이유에서라면, 사진가 김문호의 다큐멘터리 속에서라면, 풍경을 구성하는 모든 장면은 전혀 동어반복이지 않다. 기록이 아닌 개인에 따라 만들어지는 기억의 샘물을 긷거나 사유의 밭을 일궈내는 차원에서 모든 사진은 각기 다른 사유를 구성할 수 있다. 2. 인간에 대한 응시 사진가 김문호는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 사건이 아닌 사람들, 그것도 주로 이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작은 이들에 대해서 했다. 그가 대학 때 기독교 신학을 전공했고,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이 장기수 노촌 이구영과 무위당 장일순임을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사진 작업을 함께 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사진가 최민식이라면 그의 초창기 관심과 태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진가 김문호가 한 이 땅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사진 기록은 그들에 대한 응시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소외당한 이들에 대한 기록은 2003년에 출판된 《눈 밖에 나다》와 2006년의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이다. 두 권 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여 다른 동료 사진가들과 함께 편찬한 글이 함께 있는 사진 책이다. 김문호는 《눈 밖에 나다》에서 〈People on the Border〉라는 제목으로 열여섯 장의 작품을 실었다. 모두 한국 땅에 거주하는 이주민들 가족을 초상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대부분은 국제결혼한 사람들이지만 그렇지 않은 가족들도 몇 있다. 사진가 김문호가 관심을 갖는 것은 국제결혼 여부가 아니고 즉 서로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를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사는 모습 특히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의 생김새가 주는 시각적 자극성이 아니고, 그런 가족이든 그렇지 않은 가족이든, 이 땅에 엄연히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사진의 시각성을 강조하지도 그들의 삶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내지도 않는다. 평범한 일상의 모습 그대로를 담았다. 아우구스트 잔더 이후 초상 사진은 그 단독으로 대상이 어떠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고, 사진가가 그 사회성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찍는 장르가 되었고, 사진가 김문호 또한 그 방법을 충실히 따랐다. 그래서 근대 초상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 시기에 초상화가 담당했던 역할 가운데 하나인 인물에 대한 아우라 만들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어떻게 해서든 아우라를 제거하고 그 대신 전혀 아우라를 받을 수 없는 그들의 사회경제적 맥락을 집어넣으려는 시도를 읽을 수 있다.   사실에 대한 사유의 고민은 《Shadow》에서 완전히 농익는다. 사진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속된 사진가의 관심은 무엇이 대상인가가 아니고 사실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그 사실의 근거는 여전히 인간에 있지만, 사진가로서 그것을 다루는 태도는 많이 바뀌어 왔다. 인권위원회의 초상 사진들이 사람에 대한 응시였고, 《온더로드》는 인간에 (혹은 인간이 이루어낸 문명에) 대한 응시에 대한 사유로 확장되었다가 《Shadow》에서 완전한 사유로 자리 잡았다. 객관적 사실에서 주관적 사실로 넘어감이다. 인간이 소외된 도시 풍경, 인간이 사라져버린 현대 문명, 그 위에서 사진은 더 이상 객관성을 담보하는 다큐멘터리로 존재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진가 김문호의 인간과 문명에 대한 사진 담론이다. 2015년 전시한 《wasteland》 또한 마찬가지다. 인간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는 이미지로 말하는 인간에 대한 담론. 인간을 정면으로 응시하지도, 그것을 이미지로도 담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세상. 그런 문명사적 맥락에서 사진가 김문호는 사진이 사실에 대한 사유 재현을 위한 매체로서 매우 적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온통 어둠의 덩어리들뿐이다. 첫 장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림자, 빛, 흔들림, 고개 숙인 어떤 인간 정도다. 그의 주변은 무질서하게 흑과 백이 교차한다. 페이지를 넘기니 내가 검은 덩어리에 끌려간다. 물체의 대상은 이미 경계를 잃으니 관념은 그 경계의 안과 밖에서 마구 혼란스러워지는데, 우울해지는 건 사실이다. 몇 장을 넘겨보니 바벨탑이 보이고, 화염에 쌓인 도시 빌딩이 보인다. 난, 인류 최후의 날 묵시록을 읽는다. 몇 해 전 본 영화 《더 로드》의 장면이 나타난다.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버린 세계, 사람들은 다 죽고 아무 것도 없는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발을 옮겨야 하는 그 세계가 눈에 보인다. 공포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그가 이렇게 읽기를 바라는지의 여부는 중요치 않다. 나는 이미지화 되어 내 앞에 나타난 어떤 사실에서 내 나름의 해석과 느낌을 가졌고, 그 위에서 여러 가지 것을 느끼고, 떠올리고, 생각했다. 그냥 거기까지다. 사진가 김문호는 《Shadow》를 통해 존재론을 말한다. 어둠과 빛은 서로를 밀어내지만 또한 공존할 수밖에 없음의 세계. 사람들이 사물을 볼 때 빛을 먼저 보곤 하지만 자신은 어둠을 먼저 보고 그럴수록 빛의 존재가 선명하게 다가왔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그는 어둠 속 사람을 바라보면서 셔터를 누르니 사람이 덩어리로 나타나고, 상이 흔들리고 초점이 흐트러졌음을 발견하고 탄성을 지른다. 그 탄성은 자신이 가진 세계관이 사진 담론과 맞아 떨어졌음에 대한 환호이리라. 결국, 《Shadow》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소위 사진의 문법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특히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어떤 금언 같은 것, 사진을 ‘건졌다 하지 마라’라는 말, 그것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사진은 거의 대부분 우연히 낳은 산물들이고 그 우연이란 사진의 어머니다. 마치 수묵화에서 묵이 한지에서 번져가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으나 철저히 과학적으로 거부하면서 그 경지를 즐기는 태도와 흡사하다고나 할까. 사진가 김문호의 《Shadow》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사실에 대한 기록에서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성을 중시하는 작품으로 가 있다. 사진가 김문호는 이번에는 도시의 기호화 된 상징에 주목한다. 미완성작 《인더시티》는 특별한 내러티브로 구성되지 않을 것이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그렇지만 또 다시 사실과 사유의 고민을 이끌어낼 수 있는 표상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중이다.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건물들이 서서 만들어내는 풍경, 그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이미 우리에게는 사실로 기호화 되어 존재한다. 아파트는 거대한 산 앞에 자리하여 너무나 떳떳하게 자연의 풍경을 바꾸어버리면서 그것이 자연의 위치에 서버렸다. 광고판에 그려진 이미지는 비실재지만, 그것보다 더 실재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다 획일화 되어 버린 판타지의 세계, 사진가 김문호는 이 시대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천착해야 할 과제를 여기에 두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