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論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레퀴엠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가 이수철은 일본에서 사진을 배웠다. 일본에서 사진을 배울 때 그는 ‘순수’ 사진이라는 모순으로 가득한 어휘의 사진 범주를 전공했다. 왜 굳이 ‘순수’라는 말을 쓸까? 그 상대적 개념은 불순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 ‘순수’란 사회적 메시지나 시대 정신을 담지 않는 예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시대의 불온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지사적인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그 안에 담겨 있다. 그 ‘순수’ 사진을 일본에서 배워 귀국한 그가 처음 작품을 발표한 것이 1998년의 일이고, 그가 잡은 주제는 기억이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거시사의 종말을 공공연히 말하던 것이 무르익을 때, 개인과 복합과 감성이 인간 세계의 중심 화두로 떠오를 때 그 때의 일이다. 사진가는 이후 꾸준히 사진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사진을 그 자체의 본질을 갖지 않는 한낱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도구론적 입장으로 생각한다면, 문제는 그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사진의 존재론적 범주의 최후의 조건인 뭔가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 대상을 찍는 것이 사진이다, 라는 전제조차 허물 수 있다. 카메라로 대상을 찍어 필름에 담고 그것을 인화하는 것이 보통의 프로세스라면, 카메라와 필름이 없이 바로 인화로 들어가 버리는 것도 사진 프로세스 중의 하나가 된 것이 1924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아예 뭔가를 찍지 않아도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고, 그 창조된 이미지로 뭔가 작가만의 방식으로 말 하고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예술의 한 방식 아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 질문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건 매우 궁색하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사진이냐, 정도이지 않을까. 그렇다. 그것이 무엇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포토그라피photography면 어떻고, 그것이 이미지그라프imagegraph면 어떻고, 그것이 디지그라프digigraph면 어떠냐? 사진가 이수철에게 카메라는 현상을 포착하는 메커니즘의 하나일 뿐이다. 1. 디지그라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