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통념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회적 약자, 부조리, 정치적이란 단어를 연상시킨다. 사진의 출발이 다큐멘트였다고는 하나, 기록 이후 더해지는 사진에 대한 사회적 해석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취하는 정치적 포지션의 관성이 낳은 결과일 수 있다. 이는 흔히들 살롱사진이라 불리워 오는 일련의 작풍이 한국 현대사에서 그간 취해 온 탈정치적 행태에 대한 반발과 함께 맞물려온 역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살롱사진의 중심에 풍경이 존재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관습적으로 다큐멘터리와 풍경은 어느덧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갤러리 브레송이 기획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풍경 시리즈’는 이와 같은 한국 사진의 흐름에서 풍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질의를 받는 사진가는 바로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활동해 온 작가들이다. 새로운 작업이 아닌 그들이 지금껏 해온 작업들 중에 풍경에 ‘관련’된 사진을 정리함으로써 그들 각각이 생각해온 풍경을 연역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 갤러리 브레송-    알바트로스_ 서영걸  2014. 8. 11- 8. 19    1. 뉴질랜드를 떠나 남극으로 향하던 뱃길. 이틀째인가 배의 꼬리를 따라오는 커다란 새들이 나타났다. 알바트로스였다. 펼친 날개의 길이가  2-3m인 그 새는 그야말로 “날고” 있었다. 파도와 파도가 부딪혀 생기는 잠깐의 공간으로 빠져나가는 비행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2. 날기 위해서, 중력을 거부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나는 힘은 중력으로부터 나온다. 공기를 지탱하며 날개를 통해 만들어지는 터널을 미끄러져나감이 나는 행위의 전부이다. 3. 일본에서는 바보새라 불린다. 육지에서의 행동이 뒤뚱거리고 굼떠서 붙은 별명이다. 날지 못하는 종이, 걷지 못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부른다. 중력에 억눌려, 추락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뭐라고 불러야할까? 4. 날아야, 하늘에 있어야 하는 알바트로스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람을 가르는 날개를 가진, 그러나  난다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바보라 불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뱃사람들은 흔히 놀이삼아 거대한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곤 한다. 깊은 바다 위로 미끄러져가는 배를 뒤따르며 무료한 항해의 길동무가 되어주던 새. 갑판 위에 팽개쳐지고 나면 가여운 이 창공의 왕자는 어설프고 수줍어 민망스럽게 크고 흰 날개를 마치 노처럼 옆구리에 차고 질질 끈다. 날개 달린 나그네는 이제 어줍고 힘이 다 빠졌구나. 한때는 그리 멋지던 것이 어찌 저리 못 나고 우스꽝스러운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건드리며 약을 올리고 어떤 이는 절룩절룩 불구의 몸짓으로 나는 시늉을 한다. 시인은 마치 저 구름의 왕자 같아라. 폭풍우 넘나들며 사수를 비웃지만 야유소리 들끓는 땅 위로 유배당하고 나면 거창한 날개는 걷는데 되레 방해나 될 뿐 <악의 꽃>중에서 유영선 옮김, 문학과 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