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18~10.27     본 듯한, 처음 본 듯한 - 한장희가 보여주는 파푸아뉴기니의 사진들   현대인들은 하루에 10여장의 사진을 촬영하고 하루에 타인의 사진을 50여장 이상 본다고 한다. 스마트 폰 광고의 대부분이 카메라 광고가 돼버린 지도 오래다. 사진은 이제 찬찬히 찍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매체가 아니라 우리 곁에 무수히 스치고 지나가고 미끄러지는 매체가 되었다. 낯선 땅의 풍광을 보여주는 여행 사진이라고 다를까. 무시로 쏟아지는 여행 광고의 이미지와 이국의 풍광을 로케이션 삼는 교양프로그램의 이미지들로 우리 기억 속에 더 이상 ‘먼 곳’이란 없지 싶다. 우리는 지금/여기에 살면서 언젠가/거기의 낯선 풍광들을 익숙하게 소비하며 살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철도가 놓이기 시작한 19세기 유럽으로부터 ‘관광’은 시작되었고, 유럽을 동경해 대서양을 넘던 미국인들과 그 뒤를 이은 일본을 거쳐 한국에도 해외여행 문화가 싹텄다. 한국의 관광경쟁력이 역대 최고인 세계 16위에 올랐다는 최근의 보도도 있었다. 16세기 유럽인 마젤란이 라틴아메리카 끄트머리 해협에서 ‘발이 큰 사람들’을 보고 ‘파타고니아’란 이름을 붙인 때의 낯섦이나, 제임스 힐턴이 히말라야 설산의 티베트 사원들에 경탄해 낙원 ‘샹그릴라’를 떠올린 상상력 같은 것을 이 시대에 바라긴 힘들다. 무수히 생산, 복제, 소비되는 이미지들로 여행지만의 유일무이성, 여행지의 ‘아우라’는 급격하게 희미해져만 간다. 호주의 한 출판사가 그런 기시감 잔뜩 풍기는 이미지와 정보, 지식들을 끌어 모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페이크 가이드북을 펴낸 일은 이러한 현상을 방증한다. 그럼에도 한장희가 보여주는 파푸아뉴기니의 사진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낯선, ‘오래된 미래’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북반구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남태평양의 파푸아뉴기니를 다녀왔다는 사람은 달나라에 다녀왔다는 사람만큼이나 여전히 드물다. 이 섬나라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들이라도 ‘식인’ 풍습이나 험악한 치안 상황에 대한 어렴풋한 인상 정도만 언급할 뿐이다. 그 나라에 대한 정보와 이미지가 부족한 가운데, 한장희의 사진들은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이 걸어온 삶의 흔적들과 그들이 향하고 있는 길에 대한 암시를 이 사진들로 보여준다. 6년여 동안 섬에 머물며 그가 작업해온 사진들을 다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장희가 여기 꺼내어 보여주는 사진들은 파푸아뉴기니라는 낯선 땅에 적합한 방식을 취한다. 날로 세련되어져만 가는 ‘민속지학’적 방법을 연상케도 하는데, 익숙한 세계를 다르게 보여주려는 강렬한 기교 대신 단 30여장의 사진만으로 익숙하지 않은 땅에 관람자를 데려다주는 친절한 방법을 구사한다. 파푸아뉴기니를 보여주는데 이보다 적합한 방법이 있을까? 그러면서 사진들은 파푸아뉴기니와 우리의 미래에 대해 여러 가지 것들을 묻는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통렬히 비난했던 레비스트로스가 아마존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원초적 생명성은 여기에서도 퇴색해 있고, 비슷비슷한 풍광으로 표준화돼 편입되어갈 삶의 조짐도 사진들 속에 보인다. 아득히 먼 섬의 풍광이 우리네 기시감 안쪽으로 들어올 날도 멀지 않다. 이방의 땅에서 생활하며 찬찬히 파푸아뉴기니를 관찰했던 작가의 사진들을 통해 어디서 본 듯한, 또 처음 본 듯한 이미지들을 만난다. 거기서 현생 인류의 보편적 감성에 깃든 아득한 회고나 막막한 예측을 함께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희인 (여행작가, 카피라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