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적 행위_오철민, 라인석

 2020.12.19.~12.28

 

접촉과 징후로서의 사진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라인석과 오철민은 사진매체의 본질적인 성격으로 간주되는 인덱스를 질문하고자 한다. 사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은 사실 우문이다. 하나의 속성으로, 단일한 틀로 사진 매체를 규정하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사진이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려하는지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진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진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해명하려 드는 일이자 자기 작업에 대한, 사진에 관한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일이기에 그렇다. 이 두 작가는 사진 매체를 다루면서 사진이 지닌 인덱스란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사실 사진이 더 이상 의미론적 분석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자국이나 흔적(인덱스)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현대사진이기도 하다. 결과물로서 재현된 사진 이미지에 앞서 그 결과물을 있게 한 사진적 행위가 선행하며, 그 행위의 근거를 통해서만 비로소 재현된 이미지의 본질이 파악될 수 있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극히 모호하고 흐릿한 작가 고유의 감성에서 출현한 것들로서 이때 재현된 이미지는 감성의 자국, 흔적이고 이것을 기호학적 용어를 빌어 인덱스라고 칭한다는 것도 알려진 상식이다.

라인석과 오철민은 각자 이 인덱스란 개념을 해석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특정 대상을 촬영한 것이 최종적인 작품으로 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개입하거나 혹은 사진의 기록성이나 재현적 기능을 의도적으로 밀쳐내고자 한다. 이들은 그러한 교집합에서 만난다.

라인석은 사진이란 이미 기존에 존재하는 대상의 피부에 밀착했다 떨어져 나온 결과물이라고 본다. 물론 사진은 인간의 신체와 대상과의 직접적 접촉의 부산물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기계, 빛, 시간 등의 것들이 대상의 피부에 부딪쳐 나온, 서로 공모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접촉, 대상의 표면에 붙었다 나온 것이 사진 고유의 힘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대상과의 접촉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 둘의 관계는 불가피하다. 작가는 피사체에 부딪혀 되돌아온 빛으로 만들어지는 사진을 촉각적 매체로 인식한다. 세계를 만지는 것이 사진이다. 물론 이 애무, 어루만짐은 간접적이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사진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을 말한다. 어떻게? 그는 디지털데이터에 접근해서 그러한 시도를 감행한다. 사진이란, 사진의 프린트란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물질이다. 따라서 작가는 그 물질에 접근해 접촉의 흔적을 의도적으로 남긴다. 일상의 비근한 사물들, 그 하찮은 대상을 흐려놓거나 굴절시키는 등의 왜상을 일으키는 한편 긁기, 드로잉, 핑거페인팅의 전략 속에서 다분히 회화적인 작업을 시도한다. 사진을 아예 만져버린 것이자 사진과 직접적인 접촉을 갖고 이루어진 작업이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인덱스로서의 사진에 약간의 균열이 발생한다. 이 사후적 개입과 간섭은 사물의 피부에 달라붙어 그 흔적으로 머금고 돌아와 프린트라는 결과를 앞두고 이루어지는 시도다. 그로인해 디지털이미지가 갖고 있는 정보의 체계가 순간 부서지고 최종 결과물은 모니터에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가 된다. 분명 사진에서 출발하지만 기존 사진이나 회화와도 다른 이미지가 되었다. 사실 이런 시도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수정되거나 장식되거나, 또는 훼손된 사진작업의 등장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사진가들이 손의 흔적을 남기는 다양한 실험, 손질 기법을 애용했는데 예들어 아르눌프 라이너는 인화지 위에 그림을 그려 표현주의적인 자화상을 제작했고 루카스 사마라스는 폴라로이드 인화지 위에 아직 마르지 않은 유액으로 핑거 페인팅을 사용하여 패턴이 어지럽게 널린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조엘 피터 윗킨은 필름 원판 위에 아무렇게나 끄적거려 보기에도 불편한 초현실적인 구성을 내놓았다. 이들의 시도는 사진의 기록능력에만 관심을 기울인 전통사진을 타파하고, 사진은 물론 회화와도 비슷하게 보일 수 있는 표현적인 그림을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라인식의 사진은 재현되는 대상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그로인한 서사도 미미하다. 그저 연필과 볼펜, 건물의 외관 등 자신의 생활 반경에서 접촉한 소재를 디지털기술과 후보정 작업을 통해 다소 낯설고 희한하고, 재미있게 보여준다. 익숙하고 당연시되는 사진과는 다른, 낯선 감각을 발생시키는 사진이자 말 그대로 사진을 손으로 만져서 이룬 흔적이다.

한편 오철민의 사진도 재현되는 이미지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그럴 목적으로 찍는 사진도 오늘날 보기 드물어졌다. 그는 사진이란 매체를 물질로 적극 환원하는 편이다. 사진은 외부세계가 들어와 있지만 동시에 그것은 얇은 인화지라는 물질이기도 하다. 작가는 무엇인가가 찍힌 사진을 의도적으로 찢고 그로인해 이미지가 밀착된 표면과 불가피하게 종이의 물성이 드러나는 층을 동시에 보여준다. 사진은 물리적 실체로만 드러난다. 마치 폰타나가 색으로 덮인 캔버스 천을 날카롭게 찢고 절개하듯이 말이다. 3차원의 깊이를 간직하고 있던 캔버스 화면은 이내 납작하고 평평한 천으로 돌변하고 깊이가 사라져버린 화면은 다만 물질로 남고 찢겨진 그 표면은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진동한다. 오철민은 사진을 지탱하고 있는 프레임의 내부도 노출한다. 따라서 사진이 갖는 재현적 속성을 무력화시키고 사진이 기대고 있는, 사진을 사진이게 해주는 여러 물질적 토대 자체가 전시된다. 동시에 작가는 대상을 촬영한 사진과 함께 사진으로 찍은 실제 대상을 함께 전시한다. 마치 조셉 코수스의 개념미술의 전략을 연상시킨다. 전시된 작품들을 찍은 사진과 이것 자체가 작품인 사진, 그리고 사진으로 찍은 대상이라는 세 개의 층위가 맞물려 선회한다. 따라서 사진은 그 어느 것으로 귀속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부유한다. 경계에서 사는 사진이다. 작가에 의하면 이러한 작업은 ‘사진 없이 사진적인 것에 대해 말하기’를 실현하려는 의도다. 사실 오철민의 작업에서 우리가 눈여겨볼, 감상할 사진이미지는 부재하다. 두 개의 층을 동시에 보여주는, 찢어진 사진과 그 사이로 드러난 벽과 프레임(나무틀), 그리고 이 사진 안으로 들어와 버린 오브제의 연출로 이루어진 일종의 조각적인 작업에 가깝다. 그는 사진의 본질은 결과로서의 사진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적인 것에 있다면서 드러나지 않음의 사진적인 것, 사진이 겨우 말하는 방식을 고민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진은 찢겨지고 기표는 파괴되고 사진의 뒷면을 덩그러니 보여주는 것 같다. 사진의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작가는 이러한 파편들을 갖고 감상자들 각자가 의미의 실타래 끝을 잡으라고 말한다. 모종의 징후만을 남기는 사진이랄까? 이른바 말하기 중심의 사진이 아니라 응시자 중심의 다의적 의미 생성의 탈코드 매체로 사진을 여긴다는 작가의 주장이다. 이른바 불안전한 기호, 즉 수신을 위한 기호로서의 사진의 가능성을 말한다. 모든 해석은 자의적이고 그만큼 임의적이라는 얘기다.

이 두 작가의 사진작업은 사진이 지닌 인덱스란 측면을 다시 해석해보고자 하는 시도이자 사진의 재현적 기능을 벗어나고 이를 피하는 방식 내지 다르게 말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이 러한 개념만큼 작품 그 자체가 좀 더 매력적으로, 감각적으로 단단하게 밀고 올라오는 맛, 완성도 높은 질이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오철민

오철민

라인석_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_2_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_42x58cm_2015

 

라인석_휘어진 세계로부터_모나미볼펜_4_pigment based inkjet on matte paper_42x58cm_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