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mm_강재구 출판기념전

2019. 4. 11 ~ 4. 20

 

 

 

 

12mm

이등병은 입대 전 머리카락 길이를 12mm로 잘라야만 한다. 삭발은 20대 청년들이 획일적이고 집단적인 군대문화로 편입되는 시작점이다. <12mm> 작업은 입대를 전후한 동일 인물을 릴레이로 촬영함으로써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 등 지금까지의 군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코드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입대를 앞두었던 내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입대 전 삭발을 하는 동안 촉촉해져 있던 어머니의 얼굴과 흘리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잘 다녀오라는 한마디만 남기셨던 무뚝뚝한 아버지의 뒷모습. 입대하는 아침, 눈물의 밥상을 받아야 했던 낯선 느낌.

입영시리즈는 군대 입소를 바로 앞둔 이십 대 청년들의 초상작업이다. 입대 전 삭발을 한 채 가족, 연인, 친구들과 이별의 시간을 갖는 청년들의 눈빛에는 피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체념과 애틋함, 동시에 군대 생활에 대한 불안과 갈등이 뒤섞여 있다.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 시리즈에 이어 군대 생활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 곧 군인의 신분으로 변화될 이십 대 청년들의 다층적 모습을 추적하고, 그와 함께 포즈를 취한 동년배들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정체성의 한 단면을 바라보고자 한다.

 

 

 

 

 

훈육의 완성 앞에 선 포즈들

최봉림(사진평론가, 작가)

강재구의 <12mm>는 ‘정상적’ 남자라는 심리적 안정성과 국민으로서의 도덕적, 법률적 합당성을 얻기 위해 ‘12mm’로 머리를 자르고 군이 행하는 강제 훈육 앞에 선 장정군(壯丁軍)의 초상이다. 완전한 군 규율의 습득과 훈육의 완성을 향해 통과의례를 거치는 신병들의 기념사진이다. 군 훈육이 남긴 일종의 정신적 충격과 그 과정이 각인한 육체적 효과를 기념사진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사회적 초상이다. 그렇다면 강재구는 무엇을 통해, 어떤 형식으로 그 훈육의 효과들을 가시화하는가?

작가는 모델의 위치와 자세 그리고 의식에 부합하는 복장을 요구하는 일반의 기념사진과는 달리, 모델들에게 그 무엇도 요구, 통제하지 않는다. 기념사진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포즈를 연출하도록 내버려둔다. 작가는 다만 적절한 배경과 촬영의 순간, 주변 인물들의 수를 결정할 뿐이다. 배경은 훈련소 막사 앞일 수도 혹은 그 주변 시설일 수도 있고, 주인공은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 애인을 감싸 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홀로 찍은 쓸쓸한 입영사진일 수도 혹은 왁자지껄한 송별 사진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군 훈육 앞에 선 젊은이들의 여러 반응들을 보여준다. 군 훈육에 길들여질 것 같지 않은 행태로부터 이미 훈육된 부동자세에 이르기까지 입영 앞에 선 다양한 포즈들을 포착한다.

작가가 이번 작업을 위해 2매1조, 3매1조, 폴립티크 등의 형식을 택한 것은 오직 ‘12mm’와 20대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여러 다양한 청년들이 군 훈육을 통해 동질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시간의 순서에 따른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작가는 ‘삐딱한’ 혹은 자유분방한 태도의 장정군들이 군 훈육을 통해 ‘옳은’ 혹은 획일적인 자세로 변해 가는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군대가 부과한 신체적 효과를 부각시킨다. 흐트러졌던 손은 일반적으로 가지런히 주먹을 쥐고, 자유분방한 자세와 어정쩡한 표정은 이제 정면을 ‘바르게’ 응시하는 포즈로 대체된다. 작가가 기록한 촬영일시를 보면 군 훈육의 효율성에 놀라게 된다. ‘좋지 못한’ 태도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한 달 혹은 석 달이면 충분하다. 신병의 신체는 군의 필요성에 맞춰 빠르게 훈육된다. 불안한 시선은 사라지고 표정은 확고해진다. 연약함은 강인함을 향해간다. ‘노석민 22살, 2011. 11. 26’을 보라. 문신을 했던 삐딱한 ‘노석민 22살 2011. 08. 22’은 3개월의 군 훈육을 통해 이제는 예쁜 강아지를 사랑하는 애인을 세찬 바닷바람 속에서도 의연히 보호하지 않겠는가?

효율성에 의거하여 면밀하게 작동하는 군 훈육은 다음 세 가지를 목표로 삼는다. 첫째는 전투를 위한 강건한 육체, 둘째는 복종하는 의식의 완성, 셋째는 집단에 헌신하는 배타적 도덕성의 함양이다. 그리하여 군대의 훈육 메커니즘은 그 경제적 효율성, 조직 관리의 유용성 때문에 국가, 기업, 학교 심지어는 동아리의 운영에도 직간접적으로 적용된다. 더 나아가 군 훈육의 목표는 사회인의 덕목으로도 연결된다. 군복무는 건강한 노동의 덕목인 인내, 예절의 덕목인 순종, 조직의 덕목인 충성심을 ‘철없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훈육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군대는 다음의 원칙들을 준수한다. 첫째는 양도할 수 없는 엄격한 위계질서를 원칙으로 삼는다. 둘째는 훈육의 성취도에 의거한 상벌원칙이다. 마지막은 격리의 원칙이다. 이 고립을 통해 군은 그 구성원들에게 획일적인 공동체 의식, 배타적인 집단의식을 주입시키며 그들 신분의 특수성을 세뇌한다. 항상 예외 없이 실행되는 이 세 가지 원칙들은 몇 가지 물질적 요소들에서 군 훈육의 효율적 동력을 얻는다. 첫째는 일종의 감금과 폐쇄 속에서 항구적 감시와 통제를 가능케 하는 훈련소라는 교육 공간이다. 훈련소는 자유방임적인 장정군을 가두어 길들이고, 나약한 육체와 정신을 조련하는 김나지움이다. 두 번째 물질적 요소는 ‘12mm’의 두발과 군복이다. 이 두 요소는 징집병을 강력하게 구속하고 통제하는 신체의 외피로, 정신과 외모를 평준화시키며 구성원의 존재 이유를 통일시킨다. 12mm에 맞춰 머리를 자르고 훈련소에 호출되는 순간 그리고 군복을 통해 군인으로 호명되는 순간, 청년은 머리, 복장을 통해 드러냈던 자신의 개성을 삭제하고 자신을 훈육과 감시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강재구의 입대 전/후의 연속 사진은 군 훈육과정을 통해 한국 젊은이들이 겪는 정체성과 주체성의 위기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숨은그림찾기 식으로 또 다른 사진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폴립티크 ‘이영식 유인상 이재혁 이호규, 20살, 2011. 10. 24’, ‘이영식 유인상 이재혁 이호규, 20살, 2011. 11. 30’, ‘유인상 이영식 이호규, 20살, 2011. 12. 05’, ‘이호규 유인상, 20살, 2012. 01. 03’이 보여 주듯이, 이재혁의 입영과 그의 친구, 이영식의 또 다른 입영, 이영식를 환송한 이호규의 새로운 입영은 한국 병역의무의 강제성, 필연성 그리고 끝나지 않는 반복성을 선명하게 시각화한다.

강재구의 <12mm>는 훈련소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한국의 고유한 성년식 장면이다. 입대에서 이등병에 이르는 ‘군바리’의 과정을 병영 밖에서 종교적 통과의례처럼 재구성한 작업이다. 장정군은 유대교의 할례 혹은 불교의 삭발과 유사한 12mm의 이발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 그리고 고독과 불안으로 점철된 훈련을 마치면서 ‘철없는’ 자아를 탈각하고 인내하는 육체와 초월적 국가정신에 헌신하는 자아의 탄생을 ‘바른’ 시선과 자세로 통보한다. 나, 나의 친구, 친구의 친구로 이어지는 이 고통의 통과의례는 분명 한국 사회의 특이한 서열규범, 예의범절, 집단의식의 토대를 형성한다. 사회조직의 보편적 운영원칙으로 적용되는 군 훈육은 민주주의의 도래, 개인주의의 발현을 억압하면서, 한국 경제의 효율적 발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했다. 강재구의 2012년 <12mm>의 작업이 입증하듯이, 군 훈육의 효과는 민주주의가 도래하고 개인주의가 모든 세대의 생활원칙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듯하다.

그러나 군 훈육의 취약성, 허구성을 지적한 것도 작가, 강재구이다. 2004년에 전시했던 <예비역>은 군 훈육의 시도들이 결코 완성에 이를 수도, 지속적일 수도 없음을 보여줬다. <12mm>의 연속 사진이 드러내는 동일인의 포즈 변화와 <이등병>의 완벽하게 길들여진 신체는 군 훈육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증명했지만, ‘예비역’들은 한결같이, 작가의 말처럼 “군복이라는 획일화되고 조직적인 복장 안에서 자신만의 색을 보여 주면서” “군에 대한 작은 반항심들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색과 반항심’은 군의 훈육체계를 지탱하는 규율들, 즉 복종하는 의식과 집단에 헌신하는 의식을 내부로부터 허무는 강력한 요소들이다. 강재구의 사진적 증언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12mm>에서 시작한 군 훈육의 효과는 <이등병>에 이르러 정점을 향하고, <예비역>에 오면 분명한 하강국면에 들어선다. 그러나 군 훈육을 깔보지 말기로 하자. ‘예비역’의 조련은 군 훈육을 벤치마킹한 직장연수, 근무평가, 생활기록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예비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완성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번영과 성공적인 대학 진학과 아들의 출세를 위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훈련소의 훈육을 결코 잊지 못하는 한국의 어른들은 ‘예비역’이 끝나도 부하직원, 제자 혹은 자식을 ‘군대식으로’ 훈육하려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 훈육은 징병제를 통해 ‘철없는’ 청년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면 그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12mm>에 등장하는 장정군들처럼 ‘제대로’ 교육시키면, 그들은 훗날 ‘예비역’에서 실패한 훈육의 완성을 그들의 직장과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

 

Social Photography

사진비평_성민(Min Seong)

강재구는 전작 이등병(2002)과 예비역(2004)의 연장선상에서 움직인다. 다양한 인격을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최하위계층인 이등병 계급의 증명사진들은 집단적 기억, 이해 또는 오해와 맞물려 관객들 앞에 기묘하게 서 있었다. 이후 계속된 예비역 작업에서, 흐트러진 그들의 군복과 삐딱한 포즈는 군복이라는 인격말살의 표상에 맞서 꿈틀대는 육체의 본능적 반항처럼 생각되었다. 시간 순서를 어지럽게 교차하며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영화처럼, 강재구는 이제서야 그들이 ‘군인’이 되기 전, 입대 직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사진 속 인물들은 자신들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사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재구가 진행해 온 작업의 인물들은 모두 제 각각이지만, 그들의 개인적 이야기는 작가가 제한하는 형식 속에서 상황의 일반적 표상으로 바뀌고 관객들의 머리 속에서 영원히 순환되는 이야기로 재배치된다. 입대-이등병-예비역.

강재구는 이 이야기를 상황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연출한다. 굳은 표정으로 혼자 등장했던 흑백의 이등병, 스트로보를 사용하여 마치 무대로부터 분리된 듯 어색한 존재감을 부각시켰던 예비역 작업 대신, 이번 작업의 입대지원자들은 자유스러운 포즈와 소품, 주변 사람들과 함께 등장한다. 군복은 죄수복과 함께 제복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구속력과 배타성을 가지는데, 형식은 그것이 지향하는 가치를 거칠게 반영하며 심지어 신체에 대한 장악력을 가진다. 예비역의 긴 머리가 군복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프로토콜과 벗어난 균열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돌려 말하면, 군복을 입지 않아도 짧게 깎은 머리카락 만으로 미완의 군인 이미지는 가능해진다. 강재구는 A를 둘러싼 것들을 조망하는 것으로 A를 이야기한다. 군대와 민간사회가 물리적으로 맞닿은, 말 그대로의 경계의 땅인 훈련소에 서 있는 입소자의 주변인물들은 역설적으로 두 가지 상반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그들은 머리를 깎은 입소자들을 다른 모습의 거울이 되어 비춘다. 가장 가깝게 어울리던 사람들의 모습은 이 미완의 군인이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말해주지만, 이들을 자신들이 원래 속했던 그곳으로부터 밀어내고 있는 역할 또한 주변인물들의 몫이 된다. 노랗게 탈색된 머리와 선글라스는 의도치 않게 ‘그는 더 이상 우리와 같지 않음’을 증명하고 만다. 그래서 강재구의 작업은 이 머리 깎은 젊은이들의 이야기면서, 상실의 순간들에 대한 서글픈 증명사진이다.

해체된 획일화의 상실풍경 – 강재구의 이등병과 예비역

 

본지는 매달 전시기획자나 평론가가 추천하는 젊은 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사진계에서 중요한 작가로 떠오를 가능성이 엿보이는 젊은 작가 시리즈, 그 열번째 작가는 스타일큐브 잔다리 디렉터인 김민성씨가 추천한 강재구이다. <편집자 주>

 

글·김민성 (스타일큐브 잔다리 디렉터 | mskim@zandari.com)

작품제작 초기의 1차 자료들

 

군대. 집단적 획일성과 배타적인 조직체계로 파시즘의 잔향이 여전한 곳. 그 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그들은 군인이라 불린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묘한 관심 속에서 한국의 군인들은 여전히 존재의 당위성을 지켜내고 있다. 강재구의 이등병과 예비역 시리즈에 등장하는 모델들은 바로 이러한 군인이거나 군인이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부보다는 전체가 우선되고 철저하게 힘의 완력으로 형성되는 이 특별한 집단 속에서 그 집단의 존재감을 위해 획일성(uniformity)을 배운다. 머리모양에서부터 속옷 한 장까지 타인의 취향은 절대 불가다. 이는 다양성이 찬미되고 개인주의적 미학 등을 인정하는 자주적인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획일성은 군대에서의 존재감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명분이자 수단이다. 일반적으로 군대 초년인 이등병들은 획일성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세상을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강재구는 이등병의 운명을 아주 강한 어조로 바꾸어버린다. 상실된 존재의 중심을 대표하는 이등병으로 하여금 군복을 벗도록 하여 획일성의 일차적 해체를 시도한다. 서로 다른 사회적 관계를 지니고 있는 대상들이 한순간에 시각적으로 획일화 시키는 힘을 지닌 군복. 이 유니폼이 주는 강제성은 물론 집단적인 힘을 해제시켜버림으로써 이등병이라는 계급적 호칭보다는 인간의 모습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이등병에게 미약하나마 생명을 주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서의 이등병은 비복무자에게는 여전히 시뮬라크럼과도 같은 곳인 군대에서의 유일한 생명체일지도 모를 일이다. 강재구의 이등병이 획일성의 해체를 통한 중심의 회복이라면, 반면에 그의 예비역은 여전히 군대의 잔향을 끌어안고 사는 반사상태의 주체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모조 공간인 군대에서의 상실된 중심이 사회에 복귀하여 한동안 겪게 되는 반사상태. 다시 말해서 사회적 부적응의 상태 속에서 예비역들은 획일성의 그리움을 끌어안기 때문이다. 술자리에서의 군대이야기는 예비역들에게 있어 추억 그 이상의 것이 되어 버린다. 아이러니다.

이등병, 젤라틴 실버 프린트. 2003년

 

이와 같이 강재구의 이등병과 예비역 시리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대인들의 모순적인 양면성에 대한 성찰이다. 게다가 이러한 대상의 인물들은 사진의 본질인 진정성의 효과를 보는 까닭에, 작가의 성찰에 보다 힘을 실어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에는 작가가 부지불식간에 전개해 놓은 군대의 부비트랩이 있다. 진정성으로 대표되었던 사진의 본질에 대한 기묘한 도전이 그것이다. 어느 순간 관람객들의 열광 한가운데 놓여있는 사진이라고 하는 매체의 양면성에 대해 작가의 이등병과 예비역은 또 다른 기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심의 상실과 회복 그리고 이를 회상하는 아이러니가 동시에 존재하는 현 사회에서 이등병과 예비역은 광의적 표현으로 우리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으며, 협의로서는 사진 그 자체의 자화상을 의미한다. 사진 속의 대상인물을 통해 사진의 정체성을 모색한다는 것이 어쩌면 모순일지도 모르나, 한편으로는 이보다 더 사진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강재구의 인물들이 말하고 있는 오늘날 사진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예비역, 컬러 프린트, 2004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사진은 모더니즘의 탯줄을 끊고 나와 포스트모더니즘의 환경을 거치며 무수한 담론들 속에서 양자적 태도를 갖는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현대미술은 대표적인 두 가지 모습으로 진행되어 왔다. 모더니즘적인 것과 모더니즘적이 아닌 것. 이 양간의 대립은 미술계의 다양한 매체들을 등장 시킨다. 추상의 주류에 환호하는 관람객은 언젠가부터 작품의 향유자이면서 동시에 주체자가 되는 경험을 통해 새로운 미술의 형식에 길들여지기 시작한다. 한편, 작가는 자기중심적인 탐구적 태도보다는 스스로를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 그 의미의 짜임을 탐색하게 된다. 다분히 추상적이며 심미주의에 천착해 온 모더니즘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미술이 만행하고 있는 반복과 복제 그리고 공간을 점유해 버리는 행위들은 천년의 역사가 지켜온 예술의 도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 영상 그리고 설치처럼 포스트모더니즘으로부터 확장하며 변화하는 장르들은 무리지어 현대미술의 정상에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사진이 있다. 무엇보다도 유일성에 대한 오래된 미술의 가치가 사진으로부터 일격을 당한 것이다. 이로써 미술에서의 중심의 상실은 다시 발생한다. 소위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에 사라졌다고는 하나 실은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여전히 존재 하고 있는 강재구의 이등병과 예비역처럼 말이다. 그리고 실제를 말할 것 같은 사진의 허구적 구성력처럼 말이다.

 

강재구의 시선이 다소 어중간해 보이지만 상당히 치밀하다. 이등병의 죽음을 초래했던 군대의 획일성을 유니폼(군복)의 제거로써 성공한 듯하나, 이등병의 목에는 여전히 군대의 기표인 군번표가 걸려있다. 군번표와 함께 절대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이등병의 머리카락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도 그들이 군인이라는 것을 곧 알아차린다. 예비역들의 부조화적인 의복 역시 군대의 획일성에 대한 부지불식의 공감대를 대중에게 전달한다. 강재구는 이러한 과정들과 이미지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혹은 예술계의 없어지지 않을 획일화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해체되었다 하더라도 거세되지 않으면서 간신히 현대 사회를 존속시키고 있는 획일화가 현대사회의 회색빛 딜레마라는 것을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현대사회의 교육과 정치 그리고 미술내부가 획일화를 벗어나겠다고 발버둥 쳐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엇. 획일성이 해체된 듯 하나 여전히 꿈틀되는 중심의 상실은 오늘날 우리의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강재구의 이등병과 예비역은 해체된 획일화의 상실풍경인 것이다.

 

 

군인 이면서 군인 아닌 청춘…강재구 작가

장정민 객원 기자

 

여기 이십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들이 찍힌 사진들이 있다. 흥미롭게도 짧게 머리를 자른 청년이 사진마다 한 명씩 꼭 끼어 있다. 이쯤 되면 이것들이 입대와 관련된 사진들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2mm라는 균일한 길이로 이발을 하고 입대를 앞둔 이 청년들을 기록한 주인공은 바로 강재구 작가다.

 

사실 그는 <이등병>, <예비역>, <사병증명> 등 꽤 오랜 시간 군인과 관련된 작업을 해 왔다. 그런데 그는 도대체 왜 군인이라는 대상에 그토록 주목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가 군인들을 재현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비밀이 숨어있는 것일까?

 

Portrait Shot#4, Pigment print, 143×101.6cm, 2009

 

 

작가는 왜 군인이라는 대상에 주목한 걸까?

 

그의 초기작인 <이등병>과 <사병증명>은 모두 군대라는 사회 내에서 촬영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등병>에서 사진 속 인물들은 짧은 머리에 전투복이나 러닝셔츠 차림을 하고 있으며, 하나같이 굳은 표정에 얼어붙은 자세 일변도다. 제목처럼 모두 이등병들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병증명> 속 군인들의 표정은 무미건조하지만, 이등병 특유의 불안감은 사라져 있다. 흥미로운 점은 사진 속 군인들 사이의 계급 차이가 발생시키는 표정과 자세의 미묘한 차이다. 여유롭고 편안한 자세의 선임과 그 옆에 선 각 잡힌 후임병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병증명>은 <이등병>과 달리 세 명의 군인이 나란히 서 있다는 점 그리고 얼굴 부분이 칼로 잘려나간 것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작가의 말처럼 이 사진들은 필름을 아끼기 위해 세 명을 한 장의 사진에 담고, 그 얼굴만 도려내 ‘사병증명’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것이다.

 

어찌 됐든 강재구의 이 두 작업은 우리 사회에서 군대가 지니는 특징들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짧은 머리와 군복이라는 복장을 통해 철저하게 개인의 개성을 희석해 버리는 우리 사회 속 또 다른 사회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특히 <사병증명>은 얼굴은 잘려나간 채 군복 입은 몸만 남겨진 모습을 통해 획일성이라는 폭력이 행사되고 있는 군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후 그는 <예비역>이라는 작업을 통해 예비군이라는 독특한 집단의 초상 작업을 선보였다. 군복을 입었지만 제각기 다른 머리 길이를 한,규정에서 벗어난 변칙적인 차림의 자유분방한 군인으로서의 예비군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촬영된 장소도 더는 부대가 아니다.소위 민간인들이 활보하는 간판이 어지럽게 내걸린 어떤 거리의 풍경이 짝다리를 한 이들의 뒤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군대에서는 벗어났지만 어쩔 수 없이 반쯤은 군인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신분은 그들의 자유분방함과는 정반대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현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12mm_김환희, 김교민, 한주혁, 최인규, 강상준, 20살, 2011.10.31, Pigment print, 69x100cm, 2011

군인 통해 사회의 단면 명징하게 그려내

 

 

이등병에서부터 예비역의 모습까지 담아냈음에도 강재구는 비교적 최근에 다시 한 번 군인에 대한 작업을 선보였다. <12mm>가 바로 그것으로, 여기에서 그는 입대 직전의 인물들을 재현했다. 이전의 작업들이 군대라는 사회 내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었다면, 이 작업은 군대에 들어가기 직전의 상태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강재구는 12mm로 삭발한 청년과 자유로운 머리 모양을 한 친구들을 함께 촬영함으로써 곧 군인의 신분이 될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또한 사복을 입은 채 자신의 짧은 머리에 대한 어색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민간인과 군인의 경계에 선 이들의 신분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사진 속에 등장하는 동일인의 모습이다. 친구의 입영을 배웅하기 위해 왔던 긴 머리의 청년이 다음 사진 속에서는 입영을 앞둔 짧은 머리의 청년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강재구는 남자라면 누구나 ‘군바리’가 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그리고 그러한 신분의 변화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명징하게 그리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군인이라는 우리 사회만의 독특한 신분의 인물들에 대해 작업한 강재구의 사진들은 사실 일종의 유형학적 사진 작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소재의 대상들을 중립적인 시선에서 촬영한 작업이 모두 다 같은 유형학적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표본이 되어 주기도 했다. 유형학적 작업이란 단순히 소재의 통일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절단해 보여줄 주는 것임을 그의 끈질긴 작업들이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장정민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연구원, 미술평론가]

 

 

강재구

1977년 서울 출생으로, 계원조형예술대학 사진예술과를 졸업했으며,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과 디지털사진 전공. 개인전으로는 <사병증명>(갤러리 이룸, 2010), <민주의 초상>(갤러리 누다, 2010), <12mm>(KT&G상상마당, 2012), <Soldier>,(Totem Pole Photo gallery, 2018)에 도쿄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룹전은 <20대 작가의 도전·IN&OUT>(코니카갤러리, 토쿄, 일본, 203),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갤러리 룩스, 2006), <일민시각문화4-靑ㆍ小ㆍ年>(일민미술관,2009), 사진비평상10년의 궤적-시간을 읽다>(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2009), <Contemporary Korea Photo Exhibition of Four Young Photographers>(가디언 가든, 토쿄, 일본, 2013), <2013서울사진축제-시대의초상·초상의시대전>(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 한국, 2013), <Five Views from Korea>( noorderlicht gallery, 그로닝겐, 네덜란드, 2014)에 참여했다.

작품집으로『12mm』(KT&G상상마당, 2012)가 있으며, 제6회 사진비평상을 수상하고, 제4회 KT&G 상상마당 한국사진가 지원프로그램(SKOPF) 최종 작가(2011)에 선정되었다. KT&G 상상마당, 일민미술관, 동상사진미술관, 일본M2갤러리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