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통념적으로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회적 약자, 부조리, 정치적이란 단어를 연상시킨다. 사진의 출발이 다큐멘트였다고는 하나, 기록 이후 더해지는 사진에 대한 사회적 해석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취하는 정치적 포지션의 관성이 낳은 결과일 수 있다. 이는 흔히들 살롱사진이라 불리워 오는 일련의 작풍이 한국 현대사에서 그간 취해 온 탈정치적 행태에 대한 반발과 함께 맞물려온 역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그 살롱사진의 중심에 풍경이 존재해 왔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관습적으로 다큐멘터리와 풍경은 어느덧 대립되는 개념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갤러리 브레송이 기획한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풍경 시리즈’는 이와 같은 한국 사진의 흐름에서 풍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질의를 받는 사진가는 바로 다큐멘터리 영역에서 활동해 온 작가들이다. 새로운 작업이 아닌 그들이 지금껏 해온 작업들 중에 풍경에 ‘관련’된 사진을 정리함으로써 그들 각각이 생각해온 풍경을 연역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 갤러리 브레송-     검은 땅 우금(于今)에 서다_박병문 2015. 10. 23~31      강원도의 내 고향 “태백” 나의 고향이며 향수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며, 어린 시절 탄광촌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들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뇌리에 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 여기 저기 흩어진 석탄 부스러기들이 냇물과 섞여서 거무내가 되어 흐르던 모습, 삼삼오오 모여 출근하고 퇴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가끔 이중교위에 “까시랑카”가 지날 때면 간간이 떨어지는 석탄 부스러기들을 주우러 나갔던 어릴 적 기억과 뒷마당 검은 땅 위에서 술래잡기 하던 그 개구쟁이 시절, 비가 오면 검은 탄들이 흘러 내려 골목길은 질퍽질퍽해서 늘 검은 신발이 되었던 기억을 되짚으며 구석구석을 바람처럼 누비며 다녔었다. 숨소리도 벅찬 낮 시간은 거대한 기계소리와 사람 사는 소리로 왁자지껄 하지만 숨을 죽인 밤이 되면 탄광촌은 또 다른 불빛들이 차지하게 된다. 하얀 가로등이 주인이 되고 사물은 조연이 되어 그저 주시할 뿐이다. 검은 사람들로 검은 도시가 번창하여 인심 또한 넉넉했던 탄광촌은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후로 쇠퇴하여 많은 사람들이 탄광촌을 떠났고, 하나 둘 폐업하는 탄광으로 인하여 그 잔해들은 시간을 거꾸로 당기고 있다. 세월의 망상으로 까시랑카의 자국만 남은 목침의 흔적, 그 흔적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땅에서 오른 희뿌연 안개가 쌓인 폐광된 굴은 그 희미한 기억마저 얼음 기둥으로 만들었다. 겨울의 안개를 끊임없이 뿜어대는 저탄장은 근대문화유산의 건재함을 굳게 지켜 나가고 광부 사람들의 집성촌인 “피냇골”은 아늑하고 포근함과 순수함을 그대로 지닌 작은 탄광촌 마을이다. 그 피냇골 입구에서 마음의 평화를 빌어주는 교회는 오늘도 우금의 중심에서 자리하고 있으며 수천 명의 광부를 거느렸던 광업소는 과거의 영광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앙상한 잔해의 자존심을 고수 하고 있다. 졸고 있는 가로등 그 곁에서 하얀 가로등은 혹여 강아지의 발자국이 남겨 질세라 밤을 꼬박 지키고 있는 정겨운 모습들, 눈을 피해 갈수 없는 이런 장면 하나하나가 내 고향 태백의 모습들이며 잠자는 사진의 감성을 붙잡아 주는 요소들이다. 그 모든 것들은 카메라의 레이더망을 벗어 날수가 없다는 것과 내일의 태양이 될 불빛들과, 내 고향 장성을 중심으로 탄광촌 주변의 마을을 밤과 낮 그리고 계절마다 누비며 매번 새로운 감성을 담았다.  철암과 장성을 샅샅이 누비면서 알게 된 것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찬란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있다는 거였다. 분진이 날리는 철암 주변의 사진을 담다보면 왠지 긴장되고 숙연해 짐을 느낄 때도 많았으며 그런 날에는 감성을 더욱더 풍부하게 해 주어 그 잔잔함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 특히 까치발건물은 번성했던 그 시대의 역사적인 산물로써 뭇 사람들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고 있다. 수많은 삶의 타래들을 풀어 헤치며 기억된 편린들을 흑백의 묘미로 담았던 것이 낡았지만 흑백이 주는 따뜻하고도 정겨운 이미지들이 과거의 추억들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었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매력은 실로 엄청나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사진은 온전히 내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사진을 보는 독자의 것이기도 한 것이다.  점점 떠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의 모습은 실로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지만 그 흔적들을 그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름다운 탄광의 풍경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사치스럽지 않으며 그렇다고 고풍스럽지도 않지만 검은 삶의 진한 향기가 풍겨져 든든한 여유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