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섭論 인물과 오브제로 기록하는 감성적 민족지(民族誌 ethnography)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가 김보섭은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가진 사진가다. 그의 작품은 화려하지도, 새롭지도, 무겁지도 않다. 이론으로 무장하지도 않고, 의식이 과잉되지도 않고, 새로운 트렌드를 쉬이 따라가지도 않는다. 30년 가까이 사진을 찍으면서 대부분 자신이 사는 인천 여러 동네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록하는 것에 열심을 다했다. 기록이라고 해서 꼭 사라진 것을 남기려 하는 의식이나 – 자신은 처음에 그것들을 기록할 때, 꼭 그것들이 사라져가는 것들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 ‘역사’와 같은 무거운 소명의식이나 시대정신을 앞세우고 한 것도 아니다. 작업 계획에 따라 체계 있는 작품을 염두에 두고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사진으로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청관》이라 해서 혹은 그것이 《양키시장》이라 해서 그 안에 인천 차이나타운이나 양키시장의 역사, 지리, 문화가 일정한 플롯 아래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건물의 이쪽저쪽 모습이 몇 장면 나오다가 정물이 몇 커트 나오다가 이내 거기 사는 주민 초상 사진이 연이어 나오면서 끝난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의 사진들이 지금에 와서는 이렇게 소중한 자료로 쓰일 줄은, 이렇게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쓰일 줄은 미처 몰랐다. 그의 사진은 아마추어 사진가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관 사진가 김보섭의 작업은 1995년 《청관》 이래로 2013년 《양키시장》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발표된 개인전과 사진집을 훑어보면, 다음의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하나는 사진들이 전체로 묶일 때 민족지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고향 인천에서 사라져 가는 공간을 사진으로 가족이나 동네 혹은 일터를 구성하는 여러 하위 문화의 이모저모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그런데 각 사진 한 장 한 장은 사진 미학적으로 볼 때 매우 뛰어난 물성(物性)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단순한 자료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 그의 인물과 정물 이미지는 매우 잘 다듬어진 시어(詩語) 하나, 하나와 같다. 둘이 섞이면 시어로 기록한 민족지가 된다. 1. 사람 얼굴로 기록하는 사라져가는 공간 사진사를 볼 때, 초기의 인물 사진 가운데 많은 것들이 초상 사진이었고, 그것은 유럽 중세의 귀족 초상화 전통을 근대 중산층 시민이 차용하여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곧 초상 인물 사진은 그 인물의 실재 사회적 위치를 기록한 것이 아니고 그가 갖고자 하는, 닮고자 하는,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품은 현재 위치를 과시하는 기록이었다. 이러한 인물 사진은 1930년대를 거치면서 인물에 역사적 맥락이 포함되면서 사회 변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다큐멘터리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김보섭의 인물 사진은 전자와 같은 이상적 초상 사진도 아니요, 후자와 같은 이념적 다큐멘터리 인물 사진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을 통해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은 충분하다. 그의 인물 사진은 사회 문화적 맥락을 내포한 중요한 민족지의 부분이다. 수복호 사람들(2008) 그의 인물 사진은 대상에 대한 사진가의 시점에 따라 둘로 나눌 수 있다. 모두 3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것이지만, 하나는 대상이 사진가의 존재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관찰자 시점이 강하게 드러난 것이고 또 하나는 대상이 사진가의 존재를 인지하고 양자 사이에 적당한 수준의 연출이 약속되어 찍은 사진이다. 우선 전자는 2008년 책으로 발표한 《수복호 사람들》에 주로 나타나는 것으로 제3자인 사진가가 수복호라는 공간 속 사람들을 엿보는 느낌으로 기록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는 안 나타나지만 그 안에 작가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마치 3인칭과 1인칭 시점의 중간 정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진가는 사진 옆에 그들의 삶을 문자로 기록하여 같이 보여줌으로써 이미지로서의 사진의 성격이 잘못 해석될 여지를 좁힘으로써 기록성에 충실하고 그와 동시에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실어줌으로써 그들 삶의 사연을 전달해주는 역할에 충실하였다. 이 때 사진가는 고민에 빠진다. 이미지를 보여주고, 해석의 여지를 넓혀 기록성보다는 예술성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사진이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을 텍스트로 보완하여 기록성에 더 충실한 것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사진가 김보섭은 《수복호 사람들》에서는 후자를 택했다. 그 안에서 인물과 텍스트 그리고 현장은 다큐멘터리 김보섭의 사진을 이루는 세 개의 솥발이 되었다. 김보섭의 또 다른 인물 사진은 《청관》에서 시작하여 그의 작업 모두를 관통하는 방식인 전형적인 초상 사진이다. 사진가가 직접 개입하여 인물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하여 찍은 사진이다. 찍힌 대상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통해 여러 가지를 읽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민족지를 구성한다. 사실, 그는 민족지로서의 기록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였다. 그는 인천 차이나타운을 촬영하는 도중에 지금은 이곳으로 건너와 사는 화교들의 뿌리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1995년 인천 청관에 살고 있던 유연서(柳延瑞)라는 이름의 할아버지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복래를 그와 함께 방문해 그 친척들의 얼굴과 생활 모습을 촬영하였다. 한국의 인천에 사는 화교에 대한 사진 민족지가 더욱 충실하게 작성되는 과정이 되었다. 인물에만 국한하지 말고 더욱 다양한 풍습을 포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사진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진가가 남긴 자료로서는 충분히 가치 있는 과정이고, 결과가 되었다. 2. 오브제가 말하게 하는 응축된 시간 《수복호 사람들》에서 보여준 김보섭 사진의 민족지적 스타일은 2013년에 출판된 《양키시장》에 와서 방법론상으로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다. 사진가는 《수복호 사람들》에서 했던 구술을 텍스트로 배치하는 작업의 형태를 버리고, 시장 사람들의 생업을 보여주는 여러 오브제를 더 작고 세밀하게 기록했다. ‘집’ 또한 중요한 오브제다. 《양키시장》 또한 《청관》 이래로 항상 그래 왔듯, 첫 장면들을 사람이 사는 ‘집’의 여러 측면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집의 외관을 보여주는 경우, 대부분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 부재를 통해 존재를 말하고자 하는 어법이다. 이러한 방식은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사진가가 이 공장들을 기록한 것은 결국 사람이 사라져버려서이고, 이곳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해 옛 시간을 담은 사람 사는 공간으로 탈바꿈 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시간의 흔적: 동구의 공장들 《양키시장》의 경우, 사진가는 시장까지 하나의 오브제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서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으로서보다는 수많은 시간이 응축된 여러 물건들이 박혀 있는 마치 박물관 같은 곳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키 시장》이 민족지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갖는 것은 그 시장에서 오랜 시간을 지켜 온 한 물 간 가게들과 그 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탁소, 전당포, 만물상, 전파상, 옷 수선 가게 등의 모습과 그 가게들을 지켜 온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한 여러 때 묻은 물건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는 ‘Ritz’ 라는 이름의 양키 비스킷에 주목할 줄 알았고, ‘말보로’에서 ‘마일드 세븐’에 이르는 양담배를 보여줌으로써 양담배 열풍이 2008년까지 지속되었다는 소중한 문화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사진가는 양키 물건에만 눈을 두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단순하게 ‘낡았다’는 어휘로는 형언하기 어려운 한 가위와 다리미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로써 그와 함께 살아온 어느 옷 수선가게의 한 장인이 겪은 온갖 풍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많은 내러티브를 중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과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낡은 가위와 다리미로 그 엄청난 시간의 무게를 말하는 방식이다. 여러 장의 사진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을 한 장의 사진으로 말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최고의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김보섭이 하는 오브제를 통한 이야기 방식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양키 시장 사진은 그것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특정한 사물을 수집 보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대영제국의 사진가들은 세계 각지로 파견되어 자신들이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되는 동물들을 – 역설적으로 - 사냥하여 그것을 박제한 후 사진을 찍어 보관하였다. 맥락은 다르지만 사진가 김보섭이 시간의 켜를 쌓은 사물들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결국은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김보섭은 인천에서 60년 동안 살아온 사람으로서 고향 인천에 대한 애정이 많았고, 본격적으로 사진 작업을 하기 시작한 80년대 말부터 잘 나가는 – 그렇지만 그가 작업한 후, 이내 쇠락하기 시작한 - 공간을 기록으로 남겨 보존하고 싶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차이나타운에 대한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보존의 욕망을 짧고 강하게 표현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는 시장에서, 한의원에서, 차이나타운에서 낡고 오래된 물건들을 만날 때 희열을 느꼈다. 《한의사 강영재》에서 볼 수 있는 어찌 보면 엽기적이고 괴기스럽기까지 하는 물건들은 모두 강영재라는 기인‘스러운’ 한의사가 일부러 보여준 다락방 먼지 속에 나뒹군 것들이었다. 사진가는 거기에서 박제된 시간을 보존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고 그것들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모두 촬영하였다. 그는 그 안에 자신이 보존하고자 하는 시간을 보존하였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한의사 강영재 3. 물성이 뛰어난, 그래서 기록에서 벗어난 기록 사진가 김보섭은 1995년 인천의 차이나타운을 기록하여 발표한 《淸館》 이래로 개인전과 출판을 열 차례 넘게 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치면, 2000년의 《한의사 강영재》, 2006년의 《바다 사진관》, 2008년의 《수복호 사람들》과 《사람과 사람, 신포동 다복집》, 2010년의 《시간의 흔적》, 2013년의 《양키시장》이 있다. 소재로나 주제로나 접근 방법이나 문제의식이나 대동소이해서 20년 넘는 작업을 특별한 분기점으로 나눌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재의 면에서 볼 때 독특한 것은 사라져 가는 공장의 모습을 찍은 《시간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재현의 방식 차원에서 보면, 2006년의 《바다 사진관》이 참 독특하다. 김보섭이 사람과 공간 그리고 기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사진가로서 재현이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바다 사진관》은 ‘북성구지’, ‘만석부두’, ‘화수부두’ 등 인천의 후미진 그래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의 오랜 시간이 축적되어 있는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을 부두를 배경으로 하여 포즈를 취하게 한 뒤 촬영한 사진을 중심으로 엮은 작품이다. 거기에 나타난 사람들로는 굴 캐러 가는 사람, 항구에서 허드렛일 하는 사람,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 장보러 나온 사람, 그냥 지나가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 그들을 한꺼번에 묶어 놓았다. 마치 시내의 어느 사진관에 찾아 온 고객들이 이런 저런 군상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을 닮았다. 그 많은 군상을 사진가는 연기 나는 굴뚝이나 송전탑 혹은 배가 빽빽하게 들어선 항구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그 앞에 세웠다. 그리고 일정한 포즈를 취하게 하고 역광을 이용하여 스몰 라이팅 기술로 촬영하였다. 도심의 실내 사진관이 갖고 있는 성격 즉 기록은 기록이되, 사진가가 개입하여 연출하여 만든 기록이다. 바다 사진관 ‘사진관’이라는 어휘는 이 맥락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사진관’ 이라는 어휘는 단순히 그런 촬영 방식의 유사함이 주는 의미를 넘어 또 다른 묘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인공조명을 터트리다 보니 배경으로 잡히는 부두는 실재보다 더 어둡게 나오게 되고, 인물의 얼굴은 더욱 밝고 긍정적으로 나온다. 단순한 사진가의 개입이라는 차원을 넘어 사진가가 의도하는 메시지를 인위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였다. 공장과 항구는 지금은 살아 있지만 이내 사라져버릴 것 같은, 어떤 묵시록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방식의 톤이고, 그 앞에 선 사람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것이 묵시록적인 배경과 모순이 되는 톤이다. 이것은 사진가의 관심이 사라져 가는 공장이 주는 슬픔보다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긍정성에 더 큰 방점을 찍은 것으로 읽힌다. 사진가 김보섭은 사진이란 항상 이미지적으로 물성이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진적으로 콘트라스트도 좋고 톤도 앞뒤가 잘 맞으며 프린트가 잘 나온, 소위 말하는 잘 찍은 사진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반면 그는 사진에 나타나는 대상에 대해 민중이네 민초네 서민이네 하는 역사 차원에서 규정하는 어떤 의미 규정을 즐겨 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과 그가 살아온 공간을 기록하되 그것을 그저 포토제닉한 사진으로 재현할 뿐이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사라져가는 것이 주는 쓸쓸함조차 아름답게 재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사진가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관계없이 항상 당당하고 긍정적으로 나오는 것은 사진가가 세계를 그렇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진가 김보섭은 기록할 뿐 역사라는 거창한 의미를 규정하고자 하지 않는다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그러한 접근을 통해 역사를 자신만의 잣대로 규정하였다. 사라져 가지만, 당당하고 아름답게! 이로서 민족지로서의 자료적 의미는 줄어들지만 감성으로서 독자들이 그 과거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는 더 크게 열린다. 사진이라는 게 특히 다큐멘터리라는 사진이라는 게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고 하는 말이 적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 김보섭의 인물과 오브제로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라져 가는 인천 도시의 민족지가 작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