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15.~9.28 (19일~22일 추석 연휴 휴관)   일제강점기는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지금까지 그 영향은 국내외 한민족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일본군 위안부 문제, 무상화교육 차별지원에 항의해 일본 전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조선학교차별반대소송, 한국 대법원에서 2018년 10월 최종 승소한 미쯔비시 징용공 원폭피해자 문제는 현재 심각한 한.일간 대치 현안이다. 1997년부터 진행된 ‘재일(在日)’프로젝트는 1999년 ‘교토 40번지’ 개인전(문화일보 갤러리, 원주문화원)을 시작으로, 재일 민족학교(2009년:원동 갤러리), 한국인 원폭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우지(宇治)시 우토로, 오사카 한인촌 쯔루하시(鶴僑) 등, 징용 1세대부터 재일동포 4세대까지의 모습을 20년 이상 기록하였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추구했던 것은 고도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그늘과 민족문제였다. 이번에 갤러리 브레송에서 전시하는 ‘다시 가 본 조선학교’ 사진은 20년 이상 진행한 ’재일 프로젝트‘ 중 하나의 주제다. ’재일 프로젝트‘는 80여 차례에 걸쳐 일본 현지 작업으로 보강하였다. 특히 2019년부터 2020년 예술가 비자로 일본에 장기체류하면서 ‘재일 조선학교’ 등의 작업을 마무리하였다.   ○ 다시 가 본 학교   재일동포의 근현대사에 있어 조선학교는 빼놓을 수 없다. 일본에서 자손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민족학교를 세웠다. 일제강점기 시절 정체성을 지키려는 재일동포 사회에서 시작된 민족교육은 꿋꿋하게 일본에서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왔다. 일본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일본 속에서 동화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그 근본 동력은 민족교육에 있었다는 데 공감했고, 민족교육이 재일동포 사회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구심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동포에게 있어, 조선학교는 마음속 ‘고향’이었다. 학교는 단지 제도 속의 시설이 아니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라 온 기억 속 소중한 장소다. ’재일 민족학교‘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기록한 사진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09년 단행본 출판과 동시에 전시하였다. 1차로 출판한 ‘在日 민족학교’는 아이치(愛知)현 5개 조선학교를 중심으로 촬영된 사진 80여 점으로 출판(도서출판 사진과글) 하였다. 이어지는 박근혜 정권 시절 역시 남북교류와 더불어 재일동포 사회도 불신과 단절의 시기였다. 모든 남북교류가 단절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치현 카스가이 리박지 위원장은 자체 판단과 책임으로 문호를 열어주었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전까지는 인터넷이나 언론에 발표하지 않는다는 약속하에, 2016년부터 나고야, 카스가이, 후쿠시마, 오사카, 교토의 조선학교를 다시 촬영할 수 있었다. 1차 촬영에서 미쳐 사진으로 다루지 못했던 조선학교의 졸업식과 운동회, 재일 조선학교 무상교육 차별에 반대하는 시위와 소송과정, 조선학교 어머니회 바자회, 초등학생 때 촬영한 학생들이 다시 민족교육의 일선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모습 등 변모한 조선학교의 현실을 2019년까지 심도 있게 기록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조선학교의 사진을 완성할 수 있게 흔쾌히 협조해 주신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8년 4월 27일 나고야지방법원 앞에서 재일조선학교 무상교육차별반대행정소송 결과가 부당판결임을 항의하는 변호인단. 몽당연필 소풍콘서트에 출연하는 초등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6,후쿠시마 퇴근하는 조선학교 교사, 아이치중고급학교,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