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5.3~5.12       날고 싶은 새는 땅에서 죽는다.   나의 지극히 사적인 고백서   새는 살기 위해서 땅에 부리를 박는다. 부리로 힘껏 땅바닥을 쪼고 기어야 겨우 하루를 지탱 할 수 있다. 아무리 맹렬한 독수리라 해도 먹기 위해서는 상승을 멈추고 하강해야 한다. 날고 싶은 새는 바닥에 이르러서야 그 날의 삶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언젠가 나는 무너졌다. 정확히 무너질 뻔했다. 격동의 시기에 십 수년간 흥망의 진자운동 같은 사업을 하며 망할 뻔 한일이 비단 그때 뿐 이겠냐 만은 그때는 심하게 망가졌다. 이전에 그런 일을 당했을 때는 다시 일어나려고 노력도 했지만, 그때는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무너져 다른 이들이 함께 망가지는게 싫어서 나로 인해 진 세상의 빚은 다 갚고 싶었다. 그래서 딱 빚만 갚고 돈만 쫓아다니는 일을 그만둬야지 하고, 빚 갚는 일을 홀로 시작했다. 혼자 뛰다 보니 여럿이 일 할 때보다 몸도 마음도 가볍고 오히려 시간이 남아, 빚을 청산하고 나면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해야지 하며, 먼 훗날의 그런 일을 준비하고자 시작한 것이 사진 공부였다. 그때 왜 사진 이었는지?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저 사진이 무엇인가를 창작하는데 만만해 보였던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어이없다. 그 언젠가 보다 훨씬 오래된 옛날,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셨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어린 나는 많은 불편과 고통을 덤으로 껴안게 되었다.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발견한 책 속의 새 한 마리가 나에게 들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나에게 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었고, 끝없는 도전의 상징이 되어, 그 새와 함께 밥을 먹고, 공부하며, 사랑하고, 웃으며 즐겁게 푸른 하늘을 날기도 하고, 때로는 어두운 시궁창에 처박히기도 하고, 죽음의 계곡을 날기도 했다. 홀로 어마어마한 빚 덩어리를 무너뜨리며 사진 공부를 하는 순간에 새는 너무 먼 하늘을 날았고, 나는 하늘을 더 이상 날지 않았다. 사진을 찍겠다고 이리저리 다니는 때에 그는 나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가 늘 나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는 내 사진 속에 무시로 드나들었다는 걸 내 사진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 사진을 찍었다. 아니 새가 내 사진 속에 들어와 있었다. 지난 사진 속에서 골라내기에도 숨이 가쁜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새들이 내가 알지도 못하고,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카메라 파인더 안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에게 있어 사진은 새다. 자유에 대한 열망이요, 끝없는 탐구에 대한 도전이다. 현실에 대한 도피이고, 실재에 대한 끝없는 수렴이다. 내 몸 밖에서 그가 울면 내 의식 안에서 새는 노래하듯이 울부짖는다. 새는 나의 본질이자, 근원이고, 내 안에서 소리 지르는 또 다른 나이다. 개인전 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라는 뜻인지 처음 개인전을 하는 나는 알지 못하지만, 우선 지극히 사적인 나의 얘기를 먼저 하는 것으로 그 첫 발을 디뎌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누구에게는 꼭 보여주고 싶고, 어느 누구에게는 죽어도 보여주기 싫은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전시가 될 터이다. 새는 혼자 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하늘을 나는 새는 없다. 누군가의 부축을 받는 순간 새는 땅에 떨어진다. 죽는다. 날고 싶은 새는 땅에서 죽는다. 내 삶이 그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