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4.2~4.11     오혜련(사진가, 큐레이터)   족보는 한 집안의 계통을 父系(부계) 중심으로 쓴 집안의 역사 책을 일컫는다. 모지웅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족보’라고 명명하고 작가의 가족 구조와 일상을 공개함으로써 우리 사회 속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제시한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객관적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세계에 대해 무엇 인가를 말해주고, 인간과 그들의 처한 환경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라고 기술한 아더 로드스타인(Arthur Rothstein)의 말처럼 모지웅의 사진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기록이면서 사회에 대한 작가의 진술 statement 이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어떠한 ‘의미’, 즉 메시지는 수용자와의 소통 기능 뿐 아니라 ‘사회’의 경험과 만남을 통해 얻어진 삶의 성찰 기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족보> 작업이 힘을 얻는 지점이 바로 상황의 실제성과 작가의 시점으로 개입된 작가의 주관과 메세지, 그리고 수용자의 공감과 성찰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군림했던 가부장적이고 지배적 남성성, 유교 이데올로기에 따른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남성성에 대한 고발이고 성별과 나이로 또 친족 관계 서열로 결정되는 위계질서에 대한 성찰의 행위이다.   가부장제의 이념 아래에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 역할이라는 관념은 큰 좌절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남성은 가정 경제 전반을 책임져야 할 강박을 느끼고 여성의 좌절 또한 만만치 않다. 사회는 결탁해 ‘아버지들은 경제적 부양을 위해 일터에, 어머니들은 가사 노동자로서 가정에, 자녀들은 학교’라는 차별적 위치를 정해주고 이는 결국 왜곡된 성 역할의 고착으로 이어졌다. 또한, 가부장적 사회의 위계 문화 속에서 집안의 어른, 선배나 상사 등 ‘윗사람’은 가부장적 권력을 통해 아랫사람에게 정신적, 신체적, 혹은 성적 폭력을 행사한다. 이는 위계 문화와 계급 사회 같은 불평등한 사회는 폭력이 없으면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불평등한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들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어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조직 속에서 교육 받은 남성이라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불평등한 가부장적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세대가 바뀌면 다시 폭력적인 질서를 유지하고 재생산 하게 된다. 가부장제는 가정의 중심이 남성이 되어 가족 구성원을 지배하는 체제이지만 결코 가족 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부장제는 특정한 사회 체제에 의해 유지, 재생산되고 권위주의적인 사회적 성격을 발생시킨다. “나는 폭력 가정에서 자랐다”라는 자기 고백에서 시작되는 모지웅 작가의 작업은 작가의 시점으로 문제 의식을 강하게 끌어내었다. 작가는 가정의 갈등과 문제점의 원인을 ‘가부장제’에 초점을 맞추어 족보를 거슬러 아버지와 가족의 내밀한 일상을 촬영했다. TV를 보거나, 식사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남자들과 부엌일을 하거나 전통 의식에서 소외되어 따로 앉아 있는 여자들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 가부장적 사회에서 요구되는 ‘남성과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가정폭력’, ‘가부장적 권력’이라는 주제 의식과는 다르게 폭력적이거나 갈등의 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거칠지만 담담하게 족보를 거슬러 가족들의 삶과 죽음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사진을 제시한다. 관찰되는 가족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연스러운 생생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상황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도 가부장적 가족 관계나 그 가족 안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들을 읽을 수 있다. 작가의 사진은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의 이야기처럼 가족의 외적 상황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코드 없는 메시지 message without code이지만 코드 없는 메시지에 함축되어있는 메시지 즉 코드화된 서사가 전개되고 하나의 기호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며 성찰 하게한다. 왜냐하면 사진은 언어처럼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구체적 현실의 닮은 꼴인 유사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의 구체적 지시성이 사진 프레임 밖의 가능성에 열려있고 수용자 각각의 경험에 따라 제2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족보> 작업에서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또 한 가지는 사진의 텍스트 즉 캡션이다. 지나간 한순간을 기록하는 사진은 과거의 정체성에 머물러있다. 이것은 현재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작가는 사진에 텍스트를 덧붙임으로써 일상적 사진이 현재와 연결되어 ‘서사’로 둔갑한다. 이때 서사는 사진에 푼크툼punctum을 느끼게 해준다. 바르트는 ‘푼크툼은 내가 사진에 덧붙이는, 그러나 이미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바르트가 말한 사진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작가는 글로 써서 관객을 끌어들인다. “내 유치원 졸업 사진이 걸려있다. 찢어진 벽지는 아버지의 훈육 결과다.” “엄마는 항상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같은 작가의 텍스트는 푼크툼을 통해 공감을 끌어내고,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관객에게 사진 속에 작용하는 이데올로기를 바라보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관객이 능동적으로 비판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작가가 텍스트를 써넣은 것도 감성적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사진이 아닌, 읽히는 사진을 제시하고자 한 노력의 일환이다.   통계청의 전국 가정 폭력 실태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우리 한국인은 40~50% 정도의 비율로 가정 폭력을 한 번 이상 경험한다. 많은 학자와 실천가들은 이런 폭력의 원인으로 다양한 요인들이 존재하지만, 가정 내 폭력은 궁극적으로 권력과 불평등의 개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WHO는 가정 내 폭력의 원인으로서 가정 내 남성의 권력 독점성을 지적한다. 이처럼 가정 내 폭력은 단순히 개인적 요인이나 특성보다는 권력과 불평등이라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음을 알수 있다. 이런 권력과 불평등으로 인해 폭력이 만연한 사회의 피해자인 작가는 작가 자신의 삶을 고백하면서 관객에게 질문한다. 사회 구조 안에 용해되어 있는 폭력 문화의 뿌리는 무엇인지? 당신의 가족은 어떠한지? 우리의 사회는 안녕한지?       .   나는 폭력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부모는 누구의 거울인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여성가족부의 조사 결과, 가정에서 폭력을 당하거나 목격한 사람이 성인이 돼서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비율이 남성은 53%, 여성은 64.4%였다. 가정폭력의 피해자 절반 이상이 가정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한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가정폭력에 대한 사건은 376.9% 증가했다. 폭력은 대물림 된다. 우리 사회는 가정 내 폭력을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피해자들을 절망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회의 시선이다. 내게 일어났던 일들은 단순히 개인 하나의 문제 때문이 아니다. 조선시대부터 변형된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남계중심의 혈연과 제사 중시, 아들 및 장남 선호, 위계적 인간관계가 원인이다. 내 작업은 내가 겪었던 것들에서 시작한다. 내 정신, 주변 환경, 그리고 친족들, 가장 가까운 것들을 기록한다. 그리고 보여준다....